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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들려준 이야기> 1부 세 번째 이야기

책 읽는 엘레나 2023. 8. 11. 06:09

두 번째 이야기 '영원히 죽지 않는 사형수'

어두컴컴한 감옥에 사형수 한 명이 갇혀 있었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칼끝'이라고 불렀지. 칼끝은 약한 친구들을 협박해서 돈을 빼앗기도 하고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기도 했지. 이런 짓을 할 때마다 친구들은 칼끝의 용기를 칭찬해 줬거든. 그래서 칼끝은 자기가 얼마나 용감한지 보여 주려고 나쁜 짓을 더 많이 저질렀어. 칼끝은 싸움을 아주 잘했기 때문에 누구나 칼끝을 두려워했어. 칼끝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더욱 신났지. 하지만 칼끝한테 바른말을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칼끝은 자기가 하는 일이 왜 나쁜 짓인지조차 몰랐고, 자라면서 나쁜 짓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됐지.

칼끝은 일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어. 힘들여 일하는 것보다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칼끝은 늘 답답했어. 무엇 때문에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거든. 칼끝의 동료들은 칼끝에게 늘 나쁜 짓만 하도록 부추겼고, 다른 사람들은 칼끝이 무서워 감히 말도 건넬 수 없었지. 그래서 칼끝은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 뭔 지조차 몰랐어. 다른 사람을 때려주고,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는 일도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어. 그게 뭐가 그리 재미있는 일이겠어. 칼끝은 빼앗은 돈으로 술을 마시고 취하기 일쑤였지. 그래도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어.

그래서 마침내 마약까지 먹기 시작했지. 마약은 죽음이 마시는 술이야. 죽음은 마약을 아주 좋아해. 사람들이 마약을 들이켜면, 죽음은 재빨리 그 사람 몸속에 들어가 마약을 받아먹는단다. 마약을 먹으면 처음에는 기분이 아주 좋아. 그건 죽음이 술에 취해 춤을 추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고, 그다음엔 죽음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해. 마약을 더 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거야. 그러면 그 사람은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된단다. 마약을 다시 줄 때까지 죽음이 계속 날뛰기 때문이지.

생명들한텐 마약은 곧 독약이나 마찬가지야. 마약을 먹으면 우리 생명들은 갈가리 찢어지고 말거든. 그래서 마약을 먹으면 사람들은 정신이 몽롱해지는 거야. 한번 마약에 빠진 칼끝도 그만 죽음의 노예가 되고 말았어. 죽음이 칼끝의 몸속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거든. 불쌍한 칼끝은 어쩔 수 없이 계속 마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칼끝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 마약 살 돈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거야. 그러나 칼끝은 사람을 죽이고도 그것이 나쁜 일인지조차 몰랐어. 결국 칼끝은 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았어.

칼끝은 제 잘못을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어. 그저 붙잡힌 게 억울할 뿐이었지. 재판장은 마침내 칼끝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어. 그러나 칼끝은 그 말을 듣고도 별로 무섭지 않았어. 칼끝은 사람이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 거야. 칼끝은 이렇게 해서 감옥에 갇혔고, 이제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지.

칼끝은 살아온 날들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만 했어. 그래서 칼끝은 그저 얼른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칼끝이 갇혀 있는 감옥 창살 틈으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단다. 참새는 어두컴컴한 감옥 안을 날아다니다가 그만 벽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말았어. 참새는 바닥에 떨어져 몸을 떨었지. 칼끝은 참새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생각에 잠겼어. '정말 한심한 참새로군. 하필이면 이런 감옥 안으로 뛰어들다니... 내 신세와 똑같아' 이렇게 생각하니 칼끝은 갑자기 참새가 가여워졌어. 그래서 참새를 그릇 안에 눕히고 수건으로 따뜻하게 덮어 주었지. 죽는 순간만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고 말이야.

그런데 참새는 쉽게 죽지 않았어. 밤이 깊도록 참새는 가냘픈 소리로 울어 대는 거야. 그 소리가 어찌나 신경에 거슬렸는지, 칼끝은 참새를 창문 너머로 내동댕이쳐버릴까도 생각해 보았지. 그런데 죽어 가는 참새는 칼끝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어. 칼끝은 생각할수록 자기와 참새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칼끝은 참새를 더 관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러자면 참새를 좀 더 오래 살려 둘 필요가 있었지. 칼끝은 참새의 입에 밥알을 떠 넣어 주려 했지만, 참새는 너무 심하게 다쳐서 밥알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어. 물만 겨우 넘길 뿐이었지. 그대로 둔다면 참새는 굶어 죽고 말 판이었어.

칼끝은 고민하다가 자기 손가락을 깨물었어. 손가락에서 나온 피를 참새에게 먹일 셈이었지. 칼끝은 끼니때마다 손가락을 깨물어 참새에게 자기 피를 먹였어. 칼끝은 하루하루를 참새를 낫게 하는 일로 보냈단다. 그러나 칼끝의 간호는 헛수고였어. 참새는 끝내 죽고 말았거든. 참새가 죽자 칼끝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펐어. 칼끝은 죽은 참새를 뺨에 비비며 슬피 울었지. 칼끝의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떨어졌어.

그 순간 칼끝은 깜짝 놀랐어. 사람을 죽이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칼끝이 겨우 참새 한 마리 죽은 것을 보고 슬피 울다니, 칼끝은 그제야 깨닫는 게 있었어. 칼끝은 크게 외쳤지. "아, 이 새는 죽어서 내 가슴에 사랑을 심어 놓았구나! 참새는 내 마음속에 살아 있어!" 사람은 모두 죽게 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거야. 죽은 참새처럼 말이야. 칼끝은 그날부터 많은 일들을 했어.

칼끝은 어린이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지. 자신이 잘못한 일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참새의 죽음을 통해 깨달은 점도 알려 주었단다. 칼끝의 편지를 읽은 어린이들은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하고 많은 교훈을 얻기도 했지. 또 칼끝은 자기 눈과 콩팥, 심장 등을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증하기로 했어.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칼끝이 사형당하는 것만큼은 면하게 해 주자고 주장하기도 했어. 하지만 칼끝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딱 잘라 반대했어.




칼끝이 사형됐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정말 중요한 것은 칼끝이 사람들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는 거예요. 살면서 우리는 실수를 할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 실수를 바로 잡을 수는 있지요.